외도를 확인하려고 숨긴 녹음기였습니다. 그 녹취록을 이혼소송에 내는 순간, 범행을 입증할 자료도 함께 제출됐습니다.
배우자의 차에 녹음기를 몰래 설치해 통화 내용을 녹음한 30대에 대한 1심입니다.
창원지방법원 형사2부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피고인은 2025년 1월 배우자의 승용차 조수석 아래에 USB형 녹음기를 설치했습니다.
그 녹음기로 배우자와, 피고인이 내연관계로 의심하던 남성 사이의 전화 통화가 녹음됐습니다.
피고인은 이 녹음을 옮긴 녹취록을 이혼소송에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재판부는 타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고 공개하는 범행은 동기가 무엇이든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비밀을 침해하는 범죄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사람,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대화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사람을 같은 형으로 처벌합니다.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입니다.
이 법정형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벌금형이 없습니다. 유죄가 되면 출발점이 징역입니다. 벌금으로 끝낼 수 있는 길이 처음부터 법에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둘째, 징역과 자격정지가 "과"로 묶여 있습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선고한다는 뜻입니다. 이 사건에서 집행유예와 함께 자격정지 1년이 붙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자격정지는 일정 기간 공무원이 되는 자격 같은 법률상 자격을 갖지 못하게 하는 형입니다.
선고된 징역 8개월은 법정형의 하한인 1년보다 낮습니다. 하한 아래로 내려왔다는 것은 형을 줄이는 감경이 적용됐다는 뜻입니다. 형법은 징역형을 감경할 때 그 형기를 2분의 1로 하도록 정하고 있어, 감경을 거치면 하한이 6개월까지 내려갑니다. 8개월은 그 바닥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그리고 그 형의 집행을 2년간 미뤘습니다. 반성과 초범이라는 사정이 쓰인 자리가 여기입니다.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데 쓰였습니다.
정리하면, 이 사건은 법이 허용하는 가장 낮은 쪽으로 내려온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징역형과 자격정지가 남았습니다.
이 사건을 시간순으로 놓으면 결과가 정해진 순간은 선고일이 아닙니다. 2025년 1월, 녹음기가 조수석 아래로 들어간 날입니다.
이 범죄는 녹음이 시작되면 성립합니다. 녹음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실제로 외도가 있었는지, 그 녹음을 어디에 썼는지는 성립 여부를 바꾸지 않습니다. 재판부가 "동기가 무엇이든"이라고 짚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배우자의 외도를 확인하려 했다는 사정은 이 죄에서 정당화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흔히 헷갈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내가 참여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이 조항이 금지하는 "타인 간의 대화" 녹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녹음기를 두고 자리를 비우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녹음되는 대화에 나는 없고, 그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들끼리의 대화가 됩니다. 같은 녹음기라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느냐가 합법과 징역형을 가릅니다.
그다음 단계가 더 무겁게 작용합니다. 녹취록을 이혼소송에 낸 것입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녹음만이 아니라 그렇게 알게 된 내용을 공개하는 행위도 같은 형으로 처벌합니다. 소송 상대방과 법원 앞에 녹취록을 내놓는 것은 내용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게다가 법은 이렇게 불법으로 녹음한 대화 내용을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정해 두고 있습니다. 이혼소송에서 이기려고 낸 자료가, 그 소송에서는 쓰일 수 없는 자료일 수 있고, 동시에 형사사건에서는 범행을 입증하는 자료가 됩니다. 녹음 파일과 그것을 제출한 기록은 누가 언제 무엇을 녹음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사건에서 피고인 쪽에 남은 것은 반성과 초범뿐이었고, 그 두 가지는 실형을 집행유예로 바꾸는 데까지만 작동했습니다. 징역형이라는 출발점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증거를 모으는 방법이 범죄라면, 그 증거는 상대방이 아니라 나를 향합니다.
어떤 녹음이 처벌 대상이고 어떤 녹음은 아닌지, 대화 당사자의 녹음과 제3자의 녹음이 어디서 갈리는지, 불법 녹음이 증거로 쓰일 수 있는지는 통신비밀보호법 편에 정리돼 있습니다. 집행유예가 어떤 조건에서 선고되고 유예 기간에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는 집행유예 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보도는 녹음된 것이 전화 통화라고 적고 있습니다. 차 안에서 들린 통화를 녹음기가 녹음한 경위의 세부는 보도마다 서술 정도가 달라, 이 글은 보도에 공통으로 나오는 범위를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