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은 2014년이었습니다. 필리핀에서 10년을 보냈지만, 그 시간은 공소시효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대포차 29대를 러시아로 몰래 수출하고 해외로 도피했던 50대에 대한 1심입니다.
부산지방법원은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약 9억 6천만원의 추징을 명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피고인은 2014년 2월부터 8월 사이 항만물류 업체 직원들과 공모해, 러시아로 가는 화물선에 정상 수출품 사이로 차량을 숨겨 대포차 29대를 반출했습니다.
피고인은 2015년 무렵 필리핀으로 도피했고, 약 10년 뒤인 2025년 국내로 송환됐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공범들이 역할을 나눠 밀수출한 것으로 규모가 크고 계획적·조직적이라며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피고인에게 동종 전과가 있고, 집행유예 기간 중에 범행했으며, 범행 후 해외로 도피했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다만 반성하는 점과 건강이 나빠진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고 없이 물품을 수출하는 밀수출죄는 관세법상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물품원가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입니다. 이번 징역 10개월은 이 범위의 아래쪽입니다.
추징은 형벌과 별개로, 범죄로 얻은 것이나 그 물건의 가액을 국가가 거둬들이는 처분입니다. 9억 6천만원이라는 숫자가 징역 10개월보다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형을 무겁게 한 쪽에는 범행의 규모와 조직성, 동종 전과, 집행유예 기간 중 범행, 그리고 도피가 놓였습니다. 가볍게 한 쪽에는 반성과 건강 악화가 놓였습니다.
여기서 집행유예 기간 중 범행이라는 사정이 결정적입니다. 이미 한 번 형의 집행을 미뤄 받은 사람이 그 기간에 다시 같은 종류의 범행을 했다면, 법원이 다시 집행을 미뤄 줄 여지는 크게 줄어듭니다. 형이 길지 않은데도 실형이 나온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많이 나올 질문은 형량보다 이것입니다. 범행은 2014년이고 선고는 2026년인데, 그 사이에 시효가 끝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공소시효는 범죄가 끝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기소할 수 없게 되는 제도입니다. 형사소송법은 장기 5년 미만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5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밀수출죄의 법정형 상한이 3년이니, 이 기준만 놓고 보면 2014년 범행의 시효는 오래전에 지났어야 합니다.
그런데 형사소송법에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시효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계가 멈춘다는 뜻입니다. 피고인이 필리핀에 머문 약 10년은 시효 계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송환돼 국내에 들어온 뒤부터입니다.
그러니 이 사건의 결과가 정해진 시점은 송환된 2025년이 아니라 도피한 2015년입니다. 해외로 나간 그 선택이 시간을 버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시효의 시계를 멈춰 세웠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도피 자체가 다시 양형에서 불리한 사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처벌을 피하려고 나라를 떠난 시간은 시효를 줄여 주지 않고, 형을 무겁게 하는 사정으로만 남습니다.
공소시효가 범죄마다 몇 년인지, 언제부터 세기 시작하고 어떤 경우에 멈추는지는 공소시효 편에 정리돼 있습니다. 집행유예 기간 중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는지는 집행유예 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보도는 적용 법조를 관세법 위반으로만 적고 있습니다. 밀수출죄 외에 다른 조항이 함께 적용됐는지, 피고인이 국외에 머문 기간 전부를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판결문으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라 이 글에서는 보도된 범위까지만 다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