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표시등을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의 핵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조문이 갈리는 자리는 다른 곳입니다.
서울의 한 경찰서가 AI 안경으로 피해자를 몰래 촬영하고 그 영상을 온라인에 올린 혐의로 남성 한 명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남성은 안경의 촬영 표시등을 가린 상태에서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촬영 사실을 몰랐던 피해자가 뒤늦게 영상을 발견해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경찰은 촬영된 영상에 피해자의 신체 민감 부위가 포함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경찰 수사 단계입니다. 기소 여부도, 어떤 죄명이 적용될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보도는 경찰이 성범죄 관련 혐의의 적용 여부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고 전합니다. 아래는 보도된 내용을 전제로 어떤 죄가 문제되는지를 정리한 것이며, 이 사람이 유죄인지를 판단하는 글이 아닙니다.
이 기기가 만드는 문제가 한 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도됐습니다. 동의 없이 성관계 장면을 AI 글라스로 촬영한 남성이 경찰에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고, 항공기 안에서 승무원을 몰래 찍은 일도 있었습니다. 시험장에서도 적발이 이어져, 국가기술자격 시험 응시자 한 명은 국가기술자격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됐습니다.
기사는 "무단 촬영"과 "유포"를 한 덩어리로 씁니다. 법으로 보면 둘은 같은 조문의 서로 다른 항이고, 성립 요건도 형의 무게도 따로 움직입니다.
그 조문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입니다. 제1항이 촬영, 제2항이 반포등, 제3항이 영리 목적의 정보통신망 반포, 제4항이 소지·구입·저장·시청을 각각 나눠 담고 있습니다. 반포등이라는 말은 조문이 직접 정의한 용어로, 반포·판매·임대·제공과 공공연한 전시·상영을 묶어 부르는 이름입니다.
하나의 사건처럼 보이는 행위가 어느 항에 걸리는지에 따라 형이 크게 달라집니다. 기사는 그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사가 말하지 않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표시등을 가렸다는 사실이 이 조문의 어느 요건에 들어가는지입니다. 촬영 수법에 관한 사정은 제14조의 문언 어디에도 요건으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제14조 제1항은 세 가지를 함께 요구합니다.
첫째,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야 합니다. AI 안경은 이 부분에서 다툴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 조문이 기기의 이름을 열거하지 않고 기능으로 적어 두었기 때문에, 안경 모양이라는 점은 요건 판단을 바꾸지 않습니다.
둘째,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찍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유형에서 실제로 갈리는 요건입니다. 사람을 찍었다는 것만으로는 모자라고, 찍힌 부분이 조문이 말하는 그 신체에 해당해야 합니다.
셋째,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했어야 합니다. 동의가 있었다면 제1항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셋이 갖춰지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유포 쪽은 제2항입니다. 제1항에 따른 촬영물이나 그 복제물을 반포등을 한 자도 같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제2항에는 한 가지가 더 붙어 있습니다. 촬영 당시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던 경우에도, 사후에 그 촬영물을 의사에 반해 반포등을 하면 처벌됩니다. 동의를 받고 찍은 영상이라도 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한 칸 더 올라가는 자리도 있습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제2항의 죄를 범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입니다(제3항). 벌금형이 없고 하한이 3년입니다. 다만 온라인에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여기까지 오는 것은 아니고, 영리 목적이 따로 인정돼야 합니다.
받아 본 쪽에도 조문이 있습니다. 제1항·제2항의 촬영물이나 복제물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제4항). 상습으로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죄를 범하면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되고(제5항), 미수범도 처벌됩니다(같은 법 제15조).
보도에서 가장 눈에 걸리는 대목은 촬영 표시등을 가렸다는 부분입니다. 촬영 중임을 알리도록 만들어 둔 표시등을 스티커로 덮거나 아예 켜지지 않도록 개조하는 방법이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진다는 것도 같은 시기 보도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제14조 제1항의 문언에는 수법이 요건으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몰래 찍었는지, 표시등을 가렸는지, 기기가 안경 모양인지 시계 모양인지는 조문이 묻는 항목이 아닙니다. 조문이 묻는 것은 무엇을 찍었고, 그것이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했는지입니다.
그렇다면 표시등을 가린 사실은 어디로 들어갈까요. 두 곳입니다.
첫째, 의사에 반하여를 뒷받침하는 자료입니다. 촬영 사실을 알리는 장치를 일부러 덮었다는 것은 상대가 촬영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정을 찍는 쪽이 알고 있었다는 방향으로 읽힙니다. 동의가 있었다면 표시등을 가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남성은 피해자에게 안경이 업무용이라고 말한 뒤 촬영했다고 하는데, 그 설명도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둘째, 유죄가 인정될 경우의 양형입니다. 계획성과 은폐 의도는 형을 정할 때 무게를 더하는 사정으로 다뤄집니다.
두 곳 모두 무게가 있지만, 어느 쪽도 제14조가 적용되는지 자체를 정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정하는 것은 찍힌 내용입니다. 경찰이 신체 민감 부위가 포함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한 대목이 바로 그 갈림길입니다. 그 부분이 확인되면 제14조 제1항의 요건이 채워지는 쪽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다른 조문을 찾아야 하는 쪽으로 갑니다.
그리고 이 갈림길은 유포 쪽까지 함께 끌고 갑니다. 제2항이 처벌 대상으로 적고 있는 것은 **"제1항에 따른 촬영물"**이기 때문입니다. 촬영이 제1항에 해당하지 않으면, 그 영상을 온라인에 올린 행위도 제2항으로는 잡히지 않습니다. 촬영 요건 하나가 촬영과 유포 두 갈래의 결론을 동시에 정하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표시등 이야기와 조문 이야기가 자꾸 어긋나 보이는 이유입니다. 표시등은 이 기기가 왜 위험한지를 설명하고, 조문은 그 위험이 어디까지 형벌로 잡히는지를 정합니다. 둘은 같은 축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기기가 교묘해졌다는 사정만으로 조문이 넓어지지는 않습니다. 조문을 정하는 것은 렌즈에 담긴 것입니다.
렌즈에 얼굴만 담긴 경우에는 이 조문이 아예 닿지 않습니다. 그때 무엇이 남는지는 식당 옆 테이블 생방송에 손님 얼굴이 노출된 사안에서 정리했습니다.
촬영과 유포가 조문상 어떻게 갈리는지, 유죄가 인정될 경우 신상정보 등록이나 취업제한이 어떻게 따라붙는지, 수사 단계에서 나올 수 있는 처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경찰 수사 단계이고, 적용 죄명은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위에 적은 것은 이 유형에서 검토되는 조문 구조이며 이 사건의 결론을 예측한 것이 아닙니다.
수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 7월이고, 그 뒤 어떤 처분이 있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기기로 벌어진 시험장 적발 사례는 국가기술자격법이 문제된 별개의 사안입니다. 기사에 함께 실려 있지만 위에서 정리한 제14조의 구조와는 다른 축이므로, 두 사안을 이어 붙여 읽지 않는 것이 정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