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미약이 인정됐는데 형은 20년입니다. 두 사실이 어긋나 보이지만, 형을 정하는 조문을 순서대로 놓으면 어긋나지 않습니다.
함께 살던 친누나를 살해한 30대 남성에게 1심에서 징역 20년이 선고됐습니다. 적용된 죄명은 살인입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부모가 집을 비운 틈을 타 누나를 살해한 것이어서 책임이 무겁다고 밝혔습니다.
범행은 올해 2월 5일, 피고인이 가족과 함께 살던 집에서 있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피고인은 흉기로 친누나를 살해했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가 피해자를 발견했습니다.
피고인은 범행 약 2주 전에 누나와 크게 다툰 뒤 집을 나가 있던 상태였습니다. 부모는 남매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경찰은 범행 추정 시각 무렵 피고인이 현장에 왔던 기록이 CCTV에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집 근처에서 피고인을 검거했습니다.
피고인은 수사와 재판 내내 진술을 거부했습니다. 동기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고, 변호인도 피고인으로부터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보도됐습니다.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입니다(형법 제250조 제1항). 세 가지가 나란히 놓여 있어서, 재판부는 그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을지부터 정합니다. 이것을 형종 선택이라고 합니다. 법이 여러 종류의 형을 함께 정해 둔 경우 그중 하나를 먼저 고른다는 뜻입니다.
유기징역을 고르면 그 상한은 30년입니다(형법 제42조). 형을 가중하는 경우에만 50년까지 올라갑니다.
그다음이 양형기준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살인범죄 양형기준은 범행 동기를 기준으로 다섯 유형을 나눕니다 — 참작 동기 살인, 보통 동기 살인, 비난 동기 살인, 중대범죄 결합 살인,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 유형마다 권고 형량범위가 다릅니다. 이 가운데 제2유형인 보통 동기 살인은 감경영역이 7년에서 12년, 기본영역이 10년에서 16년, 가중영역이 15년 이상에서 무기징역까지입니다.
그리고 심신미약입니다. 형법 제10조는 두 단계로 나뉩니다.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아예 없는 상태의 행위는 벌하지 않고(제1항), 그 능력이 미약한 정도이면 형을 감경할 수 있습니다(제2항).
감경한다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는 형법 제55조 제1항이 정해 둡니다. 무기징역을 감경하면 10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이 되고(제2호), 유기징역을 감경하면 그 형기의 2분의 1이 됩니다(제3호).
선고형은 징역 20년입니다.
심신미약을 인정했다는 대목과 징역 20년이라는 숫자는 한눈에 어긋나 보입니다. 그런데 위에 늘어놓은 조문을 순서대로 대입하면,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경로가 좁혀집니다.
먼저 성립할 수 없는 경로부터 보겠습니다. 유기징역을 고르고 거기에 심신미약 감경을 한 경우입니다. 5년 이상 30년 이하가 각각 2분의 1로 내려가 2년 6개월 이상 15년 이하가 됩니다. 이 범위의 천장이 15년이므로 징역 20년은 나올 수 없습니다. 법률상 감경을 하면 감경된 범위가 재판부가 형을 고를 수 있는 폭 전체가 되고, 양형기준의 권고도 그 안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남는 경로는 둘입니다.
첫째, 심신미약을 법률상 감경으로 적용하지 않고 형을 정할 때 고려하는 사정으로만 참작한 경우입니다. 형법 제10조 제2항은 "감경한다"가 아니라 "감경할 수 있다"입니다. 2018년 개정으로 반드시 감경해야 하는 조항에서 감경할 수 있는 조항으로 바뀌었습니다. 심신미약을 인정하면서 감경을 하지 않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경로라면 형을 고를 수 있는 폭은 그대로 5년 이상 30년 이하이고, 그 안에서 20년은 보통 동기 살인의 가중영역에 들어갑니다.
둘째, 형종을 무기징역으로 고른 뒤 심신미약 감경을 한 경우입니다. 무기징역을 감경하면 10년 이상 50년 이하가 되므로 이 범위에서 20년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경로에서 감경은 20년을 더 깎아 주는 장치가 아니라, 무기징역을 유기징역으로 끌어내리는 장치입니다.
어느 경로였는지는 판결문을 보아야 갈립니다. 다만 두 경로가 도달하는 자리는 같습니다. 심신미약이 인정됐다는 사실이 이 사건의 형을 기본영역 아래로 끌어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만든 사정도 보도에 남아 있습니다. 재판부가 든 이유는 부모가 집을 비운 틈을 이용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에 겹치는 것이 동기가 끝까지 특정되지 않았다는 사정입니다. 양형기준이 동기로 유형을 나누는 구조이기 때문에, 동기가 특정되지 않으면 참작할 동기가 있는 제1유형으로 내려갈 근거도 생기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진술을 거부한 것 자체를 불리한 양형 사정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고,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형을 올리면 그 권리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방향이 반대라는 데 있습니다. 형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릴 근거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참작할 동기는 주장하고 뒷받침해야 자료로 올라오는 사정입니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으면 유형은 그 자리에 남습니다.
감경 사유는 인정되는 것만으로 형을 내리지 않습니다. 내려갈 자리가 함께 있어야 내려갑니다.
살인죄의 법정형과 양형기준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심신장애를 주장했을 때 형 대신 치료감호가 붙으면 총 구금 기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1심 형에 불복해 항소할 때 무엇을 따지는지를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재판부가 심신미약을 법률상 감경으로 적용했는지, 형을 정하는 단계에서 참작하는 사정으로만 보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두 경로를 나란히 적은 것은 그 때문이며, 어느 쪽이었는지는 판결문으로만 확인됩니다.
동기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양형기준의 유형 분류가 딛고 서는 사정 자체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보통 동기 살인을 기준으로 설명한 것은 동기가 특정되지 않은 살인이 그 유형으로 분류되는 구조에 따른 것이고, 재판부가 실제로 어느 유형을 적용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