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보도강원도민일보2026-08-31

설계는 2m, 실제는 10m — 집중호우는 왜 변명이 되지 못했나

산사태를 일으킨 것은 비였습니다. 그런데 책임은 비가 오기 전에 정해져 있었습니다.

춘천지방법원 형사2부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항소기각, 원심 유지)

어떤 선고였나

산사태로 주민 한 명이 숨진 사고에서, 토목공사 시공업체의 실질적 대표와 현장소장이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됐습니다. 1심은 두 사람에게 각각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두 사람이 항소했지만 항소심은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사실관계는 이렇습니다

시공업체 실질적 대표 A(57)씨와 현장소장 B(52)씨는 토목공사를 진행하면서, 당초 설계된 석축메쌓기 공법을 적용하지 않고 자연사면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공사했습니다. 시행사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석축메쌓기는 돌을 쌓아 비탈면을 지지하는 공법입니다. 이것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구조물이 없는 상태로 비탈면을 남겨 뒀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해졌습니다. 깎아낸 흙을 당초 예정된 2m보다 훨씬 높은 10m가량 쌓았습니다. 그러고도 비탈면에 대한 안정성 점검은 하지 않았습니다.

2022년 8월 9일 집중호우가 내렸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대량의 토사가 흘러내려 산비탈 아래 주택을 덮쳤고, 주민 C(68)씨가 숨졌습니다.

양형은 어떤 구조로 정해졌을까요

업무상과실치사의 법정형은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재판부는 벌금이 아니라 금고를 골랐고, 8개월을 정한 뒤 집행유예 2년을 붙였습니다.

형종이 벌금이 아닌 금고로 정해진 것부터가 이 사건의 무게를 보여 줍니다. 앞서 다룬 요양원 사건에서 항소심이 벌금형으로 내려간 것과 대비되는 지점입니다. 사람이 숨진 결과는 같지만, 주의의무를 저버린 정도가 다르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실형은 아닙니다. 집행유예가 붙었습니다. 집행유예는 형을 선고하되 정해진 기간 동안 사고 없이 지내면 그 형을 집행하지 않는 제도입니다. 과실범이고, 결과 발생에 집중호우라는 외부 요인이 겹쳤다는 점이 실형까지는 가지 않은 이유로 작동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목할 것은 두 사람의 형이 같다는 점입니다. 실질적 대표와 현장소장은 지위가 다릅니다. 그런데 형은 각각 금고 8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동일합니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주의의무 — 설계대로 시공할 의무, 성토 후 안정성을 점검할 의무 — 를 두 사람이 나란히 지고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과실범의 책임은 직급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진 사람에게 각각 붙습니다.

결과는 비가 오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시간순으로 놓으면 마지막에 집중호우가 옵니다. 토사를 실제로 밀어낸 것은 비입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주택은 덮이지 않았을 것이고 C씨는 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형사책임은 시공한 두 사람에게 갔습니다. 왜 그런지가 이 판결의 핵심입니다.

과실범에서 묻는 것은 "누가 결과를 일으켰나"가 아니라 "결과를 예견하고 피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가"입니다. 예견 가능성과 회피 가능성, 이 두 가지가 과실의 뼈대입니다.

여름철 집중호우는 예견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8월에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은 토목 시공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전제로 깔고 일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그래서 비는 이 사건에서 돌발 변수가 아니라 처음부터 계산에 들어가 있었어야 할 조건입니다.

그 조건을 전제로 다시 보면, 사건의 결정적 순간은 2022년 8월 9일이 아닙니다. 설계된 석축메쌓기를 쓰지 않기로 한 시점, 그리고 2m 설계를 10m로 올려 쌓고도 안정성 점검을 건너뛴 시점입니다. 그 두 결정이 내려진 순간, 비가 오면 무너지는 구조가 완성됐습니다. 남은 것은 비가 언제 오느냐뿐이었습니다.

시행사의 요구가 있었다는 사정도 이 구조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발주처의 요구는 시공자가 설계를 벗어나도 되는 근거가 아닙니다. 안정성 점검 의무는 요구받은 적 없는 별개의 의무이고, 그것을 하지 않은 것은 오롯이 시공 측의 선택입니다.

과실범에서 자연현상은 면책 사유가 아니라 예견 대상입니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여기부터 보세요

공사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나면 업무상과실치사가 먼저 검토되고, 사업장 규모와 지위에 따라 별도의 책임이 겹쳐 붙을 수 있습니다. 설계 변경과 안전 점검 기록이 형을 가르는 자료가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관련 기준은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한계

항소심 선고이므로 상고심이 남아 있습니다. 또 이 판결은 두 시공 관계자의 형사책임에 관한 것이고, 설계 변경을 요구한 시행사 측 책임이 어떻게 정리됐는지는 이 보도만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글의 한계상고심에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도된 사실관계를 기준으로 했고 판결문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양형이 어떻게 정해졌는지에 관한 해설이며, 유무죄를 다시 따지는 글이 아닙니다.
참고한 보도
강원도민일보 · 2026-08-31 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