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5년은 유기징역의 기본 상한 30년 위에 있는 숫자입니다. 그 위로 올라간 길과, 심신미약 주장이 막힌 길이 같은 장면에서 갈라졌습니다.
택시 운전기사와 실랑이 끝에 흉기로 기사를 살해하고, 이를 신고하려던 목격자 2명을 택시로 들이받은 뒤 달아난 20대에게 징역 35년이 확정됐습니다. 죄명은 살인, 살인미수, 절도입니다.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1심은 징역 35년과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20년을 선고했고, 항소심과 대법원 2부가 그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피고인은 인스타그램에서 시비가 붙은 낯선 사람을 위협하겠다며 2025년 6월 26일 식칼 세 자루를 챙겨 택시를 탔습니다. 새벽 1시께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경기 지역의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택시는 피고인이 알려준 길을 따라가다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헤맸습니다. 새벽 3시를 넘겨 무언가에 부딪치자, 60대 택시기사는 더 이상 목적지까지 못 가겠으니 여기서 계산하라는 취지로 말하고 운전석에서 내렸습니다.
피고인은 가방에 있던 흉기를 꺼내 차 밖에 서 있던 기사를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습니다. 현장을 목격한 50대 남성 2명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피고인은 이들을 택시로 강하게 들이받은 뒤 그대로 차를 몰고 달아났습니다.
재판에서 피고인은 망상장애 등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이 발각되거나 체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판단하고 행동했다며, 조현병과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범행 당시 판단능력과 의지능력이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원심은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신고를 막으려고 주민들까지 차로 들이받았다며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피고인에게 정신질환이 있고 학창시절부터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해 온 점이 범행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점, 가족이 선처를 탄원하는 등 최소한의 유대관계가 남아 있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습니다.
세 죄명이 한 재판에서 함께 판단됐습니다.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여러 죄를 한꺼번에 재판하면 경합범이 되고(형법 제37조), 형은 죄마다 따로 매겨지지 않고 하나로 합쳐 정해집니다(같은 법 제38조). 유기징역끼리 합칠 때는 가장 무거운 죄의 형을 절반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가장 무거운 것은 살인입니다.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입니다(형법 제250조 제1항). 목격자들에 대한 살인미수는 같은 살인죄의 형에서 감경할 수 있는 죄이고(형법 제25조 제2항), 택시를 몰고 간 부분은 절도로 함께 기소됐습니다.
여기서 확인할 것이 유기징역의 칸입니다. 형법 제42조는 유기징역을 1개월 이상 30년 이하로 정하고, 형을 가중하는 때에만 50년까지 올릴 수 있게 합니다. 징역 35년은 가중을 거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숫자입니다. 살인 한 건만으로 유기징역을 고르면 천장이 30년이고, 그 위의 5년은 다른 죄가 함께 걸려 경합범 가중이 열렸기 때문에 생긴 자리입니다.
반대 방향의 장치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형법 제10조 제2항은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사람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그 능력이 미약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보았으므로, 이 조문에 따른 감경은 처음부터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검사가 구한 것은 사형이었고, 법원은 사형과 무기징역을 고르지 않고 유기징역을 가중한 35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자장치 부착은 형이 아니라 재범을 막기 위해 따로 붙는 처분으로, 형을 마친 뒤부터 20년간 이어집니다.
사건을 시간순으로 놓으면 기사를 살해한 장면과 그다음 장면이 나뉩니다. 이 판결에서 형의 모양을 정한 것은 두 번째 장면입니다.
신고하려던 두 사람을 택시로 들이받고 달아난 행동은 먼저 그 자체로 새로운 죄가 됐습니다. 두 사람에 대한 살인미수와 절도가 살인에 더해지면서 경합범 가중이 가능해졌고, 형이 놓일 수 있는 범위의 천장이 30년에서 그 위로 열렸습니다. 35년이라는 숫자는 그렇게 열린 칸 안에 있습니다.
같은 행동이 다른 쪽에서도 작용했습니다. 1심이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든 근거는 피고인이 발각과 체포를 피하려고 판단하고 행동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신고를 막고, 차를 몰고, 현장을 떠난 일련의 행동이 그 순간 상황을 파악하고 목적에 맞게 움직일 능력이 있었다는 자료가 된 것입니다. 형을 감경할 수 있는 문이 그 장면에서 닫혔습니다.
그러니 이 사건의 형은 한 장면에서 양쪽으로 굳었습니다. 위로는 천장이 열렸고, 아래로는 감경의 문이 닫혔습니다.
그런데도 형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가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따로 남아 있습니다. 정신질환과 오랜 사회적 고립이 범행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점, 그리고 가족의 탄원입니다. 정신질환은 심신미약이라는 법률상 감경 사유로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형을 정할 때 고려하는 사정으로는 다시 테이블에 올라왔습니다. 같은 사실이 책임능력 단계에서는 막히고 양형 단계에서는 반영된 것입니다.
친누나 살해 사건은 이 사건과 거울처럼 놓입니다. 그 사건은 심신미약이 인정됐는데도 형이 기본영역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고, 이 사건은 심신미약이 배척됐는데도 정신질환이 사형과 무기징역을 막는 사정으로 남았습니다. 심신미약을 인정받느냐가 형의 전부를 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범행 뒤의 행동은 형을 더하는 죄가 되기도 하고, 형을 덜어 줄 주장을 거두어 가기도 합니다.
살인죄의 법정형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심신미약이 인정되는 기준과 2018년 개정 이후 감경이 재량이 된 의미, 살인미수가 언제 성립하고 얼마나 감경될 수 있는지, 그리고 대법원이 형량을 다시 봐주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확정된 판결이라 더 다툴 심급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35년이 어떤 가중과 감경의 순서를 거쳐 정해졌는지, 양형기준상 어느 유형이 적용됐는지는 보도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위의 설명은 보도된 죄명과 양형 이유를 법정형의 구조에 비추어 읽은 것입니다.